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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로 알아보는 영화 속 감독의 의도와 촬영기법

by 윤초초 2024. 7. 26.

영화 조커의 촬영기법

 

코믹스 악당 캐릭터인 '조커'를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 조커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다양한 기록을 경신했다.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써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청소년관람불가 R등급 영화 중에서 흥행 신기록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조커에서 가장 찬사를 많이 받은 요소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조커로 탈바꿈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와 치밀한 계획이 담긴 촬영기법이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 어떻게 관객들에게 조커라는 캐릭터를 전달했는지 그 연출과 촬영기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화면비로 나타낸 인물의 존재감

영화 '조커'는 쓰레기가 뒤덮인 암울한 가상의 도시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길 소망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결국 조커로 변화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제작과 관련해서 감독과 촬영감독이 가장 먼저 논의한 것은 '화면비'였다. 보통 1.85:1과 2.39:1 비율은 상업영화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화면 비율 중 하나이다. 하지만 토드 필립스 감독은 데뷔작을 제외하고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서 1.85:1 화면비를 쓴 적이 없다. 하지만 조커에서만큼은 이 화면 비율을 도입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조커의 연출에 있어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중 하나는 초반부에 모든 관객들이 아서 플렉을 작고 미미한 존재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2.39:1 대신 1.85:1 화면비율을 사용하면 아서 주위의 공간과 여백을 확장시킬 수 있기에 이를 채택한 것이다. 덕분에 화면 속에서 먼지와 때가 낀 도시는 사방에서 아서를 둘러싸며 아서를 더욱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망원렌즈로 만든 관객의 시선

광각렌즈로 작게 촬영된 아서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도시 풍경의 일부 같아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이때 망원렌즈를 사용해 조커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이 망원렌즈는 모순된 선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망원렌즈는 배경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주로 피사체를 배경으로부터 분리하고 싶을 때 사용된다. 그래서 망원렌즈는 주변 환경에서 소외된 주인공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하고, 로맨스 장르의 영화에서는 서로밖에 안 보이는 두 주인공의 꿈결 같은 순간을 표현할 때 이용되기도 한다. 조커와 같은 스릴러 장르에서 보통 망원렌즈의 시점은 관찰과 감시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 초반에는 관객들이 아직 아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관객과 아서를 물리적·심리적으로 서로 떨어트려놓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객은 망원렌즈를 통해 아서를 멀리서 보거나 몰래 관찰하듯이 확대해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서와 관객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사람이나 자동차 같은 장애물이 등장해 거리감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아서가 골목에서 불량한 청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혼자 남겨진 순간에서야 카메라는 망원렌즈가 아닌 광각렌즈로 아서를 보여준다. 장애물로 가려져 있지 않은 아서의 온전한 모습을 말이다.

 

아서를 작고 하찮은 존재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아서가 심리상담사와 만나는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때의 첫 장면 역시 아서는 망원렌즈를 통해 나타난다. 또한 장애물이 많았던 전 장면과 마찬가지로 심리상담사의 흐릿한 형체가 관객과 아서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다음 와이드컷으로 넘어가도 아서는 사무실 속 다양한 물체에 가려져 있다. 이렇게 서류 더미와 사무용품 사이에 묻힌 아서를 보여줌으로써 카메라는 아서의 존재가 심리상담가에게 있어 주변에 쌓여있는 일거리의 일부일 뿐이란 것을 알려준다. 촬영감독인 로렌스 셔는 이 장면에서 아서 머리 위의 공간을 필요 이상으로 남겼는데, 이를 통해 아서의 존재를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아서를 짓누른 압박과 스트레스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클로즈업샷으로 표현된 인물의 내면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아서의 다양한 불행을 목격하고 아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아서가 집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거리를 둔 촬영기법도 바뀌게 된다. 이후 아서는 광대로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한다. 아직 광대 분장을 하고 있었던 아서는 지하철에서 정장을 입은 취객 3명에게 폭행을 당하다 이들을 모두 총으로 쏘고 도망친다. 광대가 부유한 기업의 직원 3명을 살해한 이 사건은 상류층을 향한 대규모 광대 시위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아서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의 존재감이 없었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상담사에게 털어놓는다. 이때부터 다양한 장면 속에서 아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하찮게 표현되지만, 이와 대비하여 감정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클로즈업샷이 번갈아 보인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아서의 욕망은 그가 경찰차에 이송될 때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영화 초반에는 버스에 탄 아서의 모습이, 영화 후반에는 경찰차에 탄 아서의 모습이 각각 비슷한 구도로 촬영됐다. 그리고 초반 장면에서 카메라는 버스 안에 있는 아서 대신 버스 차창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영화의 대단원 즈음 아서가 차 안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도시의 혼돈을 보고 있을 때 카메라는 유리가 아닌 아서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조커의 촬영기법은 이렇게 눈에 크게 띄지 않으면서 동시에 특정한 시점과 시선을 반영하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 관객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로렌스 셔는 이외에도 호아킨 피닉스의 즉흥적인 연기를 담을 수 있도록 세트에 있는 동안 항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렌즈를 이용한 예술적 연출과 연기자의 감각을 반영한 촬영으로 매우 흥미로운 영화를 완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