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는 한국의 토속신앙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오컬트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토속 신앙적 문화와 민족주의에 대해 살펴볼수 있는데, 이러한 점을 미리 알고 보면 영화를 보는데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묘 세계관 분석을 통해 숨겨진 디테일을 찾고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음과 양이 지배하는 세계관
파묘의 세계관에서는 귀신과 도깨비 같은 존재들이 실재한다고 가정하며, 이에 일본 귀신 역시 포함된다. 영화 속 주인공인 김상덕의 딸은 카이스트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항공회사를 다니는 과학자이다. 그런데 상덕은 자신의 일과 딸의 직업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속 배경상 '물리학'과 동양의 '음양오행'은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풀어 설명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둘 다 자연의 이치를 풀어 설명하는 일종의 자연 과학인 셈이라는 것이다. 물리적인 실체를 연구하는 것이 과학자라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해 주는 것이 무당이다. 따라서 파묘에서는 풍수지리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소위 말해 조상의 묫자리가 후손의 길흉화복과 큰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영화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밝은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상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파묘의 세계이다.
오컬트로 풀어낸 대립구도
파묘에서는 독특하게도 일본 귀신에 대한 내용 또한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의 귀신은 대부분 '한'을 품은 존재로 여겨진다. 너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이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로 사망하면 한을 품은 귀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무당'은 한이 남은 귀신의 사연을 듣고 또 풀어주면서 귀신의 승천을 돕는다. 하지만 일본의 귀신은 한국과는 다르다. 파묘 속 일본 귀신은 한을 가진 한국 귀신과는 다르게 인격적인 존재라기보다 일종의 자연재해에 가까운 존재로 표현된다. 따라서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을 해하는 귀신이 일본 귀신이라고 소개된다. 왜 생겼는지 이유조차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퇴치할 방법도 딱히 없는 일본 귀신. 그래서 영화 속 나오는 무당들은 일본 귀신이라고 하면 전부 질색한다. 다만 파묘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음양오행에 있기에, 김상덕은 이를 이용하여 일본 귀신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한국의 주술
영화에서 시간을 10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일본에서 온 여우 인간으로 변장한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는다. 대륙을 움켜잡고 있는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 민족의 전기를 말살하고자 한 것이다. 여우처럼 의심이 많았던 기순애는 여러가지 안전장치도 걸어놓는다. 먼저 쇠말뚝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400년 전 사망했던 흉포한 쇼군의 신체를 이용한다. 그의 머리에 칼을 박아 쇠말뚝 대신 사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주술을 걸어 쇼군의 영혼을 일종의 오니처럼 만든다. 이는 비석에 정확한 좌표를 적어 무덤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여기서 쇼군은 도저히 죽일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진 악귀로 묘사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쌍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1만 명을 죽인 용맹한 대장군인데 자신의 신체를 강탈당하고 한국까지 끌려와 쇠말뚝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400년 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기순애가 쇼군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나라 무당과 일본의 음양사가 귀신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해 보인다. 무당은 어떻게든 귀신의 한을 풀어주려 하지만 음양사는 그저 귀신을 이용할 뿐이다. 그는 무덤에서 여성 형상을 한 뱀을 불러내며 기만 전술을 펼치는데, 이 뱀도 '누레온나'라고 불리는 일본 요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주술을 걸어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그는 여우 떼를 이용해 무덤가를 철저하게 지키게 한다. 왜 기순애는 이렇게까지 집착하며 행동했을까?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를 생각했을 때 기순애는 일본이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대륙 정벌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 캐릭터 같다. 임진왜란과 2차 세계대전에서 보듯 일본은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욕망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계속해서 북진을 외치는 사무라이와 쇠말뚝을 박은 기순애. 둘 다 일본의 잘못된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묘는 항일의 색채를 진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기순애의 비밀이 밝혀지자 돈만 밝히는 줄 알았던 김상덕이 쇠말뚝을 제거하고자 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상덕의 태도변화가 갑작스럽게 느껴질수 있지만, 그는 돈을 받고 풍수를 알아봐 주는 생활인이면서도 누구보다 땅을 사랑하는 지관이기에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민족주의를 표현한 연출
땅이 만물의 어머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김상덕은 어느새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기 행복이 아닌 딸과 손자가 살아갈 땅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과 민족을 위해 쇠말뚝을 뽑는다. 항일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자동차를 가만히 살펴보면 각각 차량번호가 '0301', '1945', '0815'로 3·1운동과 광복일을 암시하고 있다. 이른바 이스터에그인 셈이다. 또한 김상덕이 파묘를 하며 100원짜리 동전을 무덤에 던지는 장면에서는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이 돋보인다. 이러한 부분은 후반부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일종의 복선으로도 생각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 '김상덕', '이화림', '윤봉길' 등 극중 주요 인물들은 전부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국가를 보위한다는 뜻의 '보국사' 이름 또한 심상치 않은데, 보국사를 창립한 원봉 스님 역시 일제강점기 시기의 김원봉 독립운동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친일파 자손들인 박근현과 박지용은 을사오적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체적인 줄거리 외에도 파묘 속 숨겨진 설정과 연출을 찾다 보면 감독이 의도한 민족주의적 특징과 역사를 알 수 있다. 이를 이해하면 더욱 흥미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파묘가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이번 천만 관객 수를 돌파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