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980년대 미국 여피족들의 생활상을 기반으로 한 호러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의 역사 배경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영화는 유명한 아역 배우였던 크리스찬 베일이 성인 배우로 우뚝 서게 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뉴욕의 여피족을 사이코 킬러들과 오버랩 시켜 풍자한 것이 특징입니다. 주체 자체가 뉴욕의 여피족들이기에 그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알면 영화를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80년대를 강타한 '여피족'이란?
'여피(Yuppie)'란 단어는 '영 얼반 프로페셔널(Young Urban Professionals)'이란 단어를 축약해 만든 1980년대 초 미국의 신조어입니다. 말 그대로 젊은 도시의 전문직 계층을 뜻하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당시 금융계나 법조계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미국의 2~30대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그들 특유의 말투라던지, 소비패턴, 라이프 스타일 등을 암시하던 단어로 쓰였습니다. 또한 그 사람들 자체를 '여피족'으로 지칭해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굉장히 독특한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1960년대의 미국 사회는 제조업이나 대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됐기 때문에 돈을 벌고자 하면 보통 그런 기업에서 젊었을 때 돈을 적게 받으며 일하다 꾸준히 경력을 쌓아서 높은 직책으로 승급 했을 때서야 돈을 많이 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면서 갑자기 20대, 30대 교육이 높은 수준으로 오르면서 전문직 청년들이 억대 연봉을 받게 된겁니다. 이들이 활개를 치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여피족'이라는 단어 또한 생겨난 것이죠.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경제 변화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갑자기 많은 돈을 벌수 있게 된 것일까? 미국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기초 사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자유와 평등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간혹 생깁니다. 1960년대에는 히피운동, 반전운동, 여권운동, 인종차별반대운동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평등 추구를 향한 목소리가 많이 모이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맞물려 부의 재분배 또한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죠.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부유층에 대한 세율이 약 90%까지 올랐었는데, 이게 60년대가 되도 7~80%대를 유지하며 굉장히 많은 세금을 냈습니다. 부유층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 세금을 내는 것이 괜찮다는 서로간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가 되면서 미국은 '오일 쇼크'라는 큰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됩니다. 당시 일본과 독일의 제조업이 재건을 마치면서 미국의 제조업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했고,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려의 분위기 속에서 여러 대안책이 등장하는데, 이 중 하나인 에임랜드의 철학이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생존 본능을 꺾고 경쟁 사회에서 도태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모두 자기 능력대로 살아가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라는 이론을 펼집니다. 이는 기업의 주체적인 역할 어필의 중요성과 함께 대두되며 점차 사회는 자유를 추구하는 분위기로 넘어오게 됩니다.
고소득층의 소득세가 엄청나게 줄어들고, 이후 금융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부유층들의 자산 운영도 변화를 맞이합니다. 잉여 자산을 갖게 되면서 투자를 할만한 주식 시장이나 채권, 펀드에 관심을 갖게된 것이죠. 중산층의 은퇴 자금도 주식이라던지, 채권같은데 투자를 하게되면서 젊은 사람들 역시 빠르게 승진해 고위직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중 특히 금융권은 자유시장 원칙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포진해있기에 다른 회사에 비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는 젊은 금융권 직원들은 주식이나 채권을 많이 판매하며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영화에서 표현된 '여피족'의 삶과 사상
그렇게 생겨난 여피족들은 이전 공동체주의와 이상주의를 중시했던 히피족들과는 정반대 사상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세상을 굉장히 시니컬하게 바라본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피족들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그것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은 성공을 했기에 돈이 많은 것을 굳이 숨길 필요도 없으며, 약자에 대해 연민을 느끼거나 도와줄 필요도 딱히 없다라고 느끼는게 여피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피의 사상은 또 다른 80년대 영화인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칵테일' 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양복을 입고 등장하는 여피족 시인은 '돈보다 중요한게 뭐있냐'라고 운을 띄우며 '혁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며, 예술은 비싼 예술이 더 좋은 예술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들이 어떻게 보면 80년대 여피들의 사고방식을 풍자화해 보여주는 대사라고 볼수 있는 겁니다.
'아메리칸 싸이코' 영화에서 역시 미국 여피의 삶을 의미하거나 풍자하는 장면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대 금융업 종사자인 주인공은 매일 아침마다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명품 디자이너의 수트를 입으며, 비싼 화장품으로 피부를 관리합니다. 본인이 거주하는 펜트하우스에 반복적으로 사람을 불러들이고, 그들을 살해하면서 쾌감을 느끼는데 이때도 카메라는 피가 낭자한 화면 속 주인공의 고급 명함을 비춥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오마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주인공의 호화로운 삶과 동시에 허영으로 가득한 그의 사상을 직간접으로 느낄수 있습니다.